독립영화관에 간다는 건 영화를 보기보단 품는 것

박정우

 
나의 첫 독립영화관은 25년 설을 맞아 찾은 대구의 오오극장이었다.
그 전년도에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정말 재미있게 봤었는데, 그때의 여운이 그 당시까지 남아있어 그런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었다.
큰 사건이 일어나거나, 극적인 시각적 효과가 나타나는 게 아니라, 조용히 일상을 보여주는 그런 느낌의 영화. 그런 영화를 찾고 싶었다.
그렇게 영화관에 걸려 있는 작품들 사이에서 비슷한 여운을 줄 수 있는 영화를 찾아봤고, 그때 고른 영화가 바로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가 걸려 있던 영화관이 바로 대구의 독립영화관 오오극장이었다.
대구의 오오극장
대구의 오오극장
오오극장에서 봤던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오오극장에서 봤던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오오극장을 방문하기 전까진 독립영화관이라는 것이 있는 줄 모르고 살았다. 아니 어쩌면 흐릿하게 알곤 있었던 것 같지만, 솔직히 작은 영화관은 시설도 그렇게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기피했던 것 같다.
첫인상도 그런 선입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작은 공간, 작은 스크린, 그렇게 만족스러운 공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그 이미지는 완전히 바뀌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영화가 시작되고 끝나는 방식에 있었다. 광고 없이 곧바로 영화가 시작되었고, 상영 시간도 정해진 시간에 맞춰 시작됐다. 영화가 끝난 뒤에 객석 조명도 바로 켜지지 않았고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가고 나서야 비로소 켜졌다.
대형 영화관에는 영화 앞으로 광고가 붙고, 영화가 끝나자마자 사람들이 일어나며 조명이 켜지는 등 영화를 작품으로 보기보단 정해진 시간에 소비하고 빠져나가는 상품으로 느껴지는데 익숙했었다.
반면 이곳에서는 영화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것이 느껴졌다. 단순히 상영 상품이 아니라 감상해야 할 창작물로서 느껴지게 해주었다는 점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단순히 화면이 크다고 영화를 더 깊게 감상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경험이었다.
이때의 경험 덕분에 서울에 돌아와서도 계속해서 독립영화관을 찾게 되었다.
 

영화 밖에서의 재미가 있다.

독립영화관에선 영화 티켓을 발급 받을 때면 포스터를 주기도 하고, 쿠폰에 도장을 모아두었다 언젠가 무료로 영화를 볼 수도 있다. 아주 큰 혜택은 아니지만 이런 사소한 것들이 영화를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단순히 두 시간 동안 보고 마는 일이 아니라, 영화관이라는 공간에 들어가서 다음 그곳을 찾을 때까지 모든 과정이 감상의 일부가 된다.
‘파리 텍사스’를 관람하고 받은 포스터
‘파리 텍사스’를 관람하고 받은 포스터
독립영화관 에무시네마의 쿠폰
독립영화관 에무시네마의 쿠폰
그리고 이런 독립영화관에 걸려 있는 영화들은 대체로 상업영화보다는 예술영화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영화 평론을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된다. 내가 본 방식으로 영화를 해석해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평론을 보면서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따라가는 재미도 있다.
이렇게 영화를 다른 모습으로 다시 바라볼 수 있다는 점도 독립영화관의 매력이다. 어쩌면 내가 독립영화관을 계속 찾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그곳의 영화들은 빠르게 보고 잊히기보다, 쉽게 정리되지 않은 채 오래 남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반대로 말하면, 예술영화이기에 때로는 무엇을 말하려는지 쉽게 잡히지 않고, 어떤 장면은 끝내 명확한 설명 없이 남겨지기도 한다.
 

친절하지 않아 오래 남는다.

물론 극장의 분위기만으로 감상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영화가 오래 남으려면 영화가 재미있어야 한다. 영화가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면 그 경험은 쉽게 휘발된다.
그런데 예술 영화는 처음부터 직관적인 재미를 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작년에 본 영화 <미세리코르디아>가 생각이 난다. 보는 내내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였다.
다른 객석에서 어이가 없다는 듯한 헛웃음이 흘러나오기도 했고, 나 역시 이 장면이 웃긴 장면인지, 불편해야 하는 장면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장면에서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지만 바로 알 수 없었고, 어떤 것을 말하고 싶은 건지 잘 잡아내지 못했다.
영화를 보고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이동진 평론가님의 영상을 보면서, 그제서야 아! 했던 기억이 있다.
덕분에 영화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나만의 시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단번에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 내가 불편하게 생각했던 장면들이 영화가 의도했던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미세리코르디아>
영화 <미세리코르디아>
그리고 이해하기 어려웠기에, 결국엔 가장 오래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친절하지 않았기에, 바로 정리되지 않았기에, 영화가 끝난 뒤에도 내 안에 남아서 계속 이어진 것 같다.
장면이 남긴 불편함이 질문이 되고, 그 질문을 따라가다 어느새 영화가 내 삶에 녹아들게 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조금 오래 남는 영화를 원한다면,

나는 영화 전문가도 아니고, 이런 예술영화가 어떤 점에서 더 뛰어나다고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나의 경험에서 ‘독립영화관에서 예술영화 보는 일’은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조금 다르게 대하는 법을 알려준 좋은 경험이었다.
영화를 잘 알아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장면 하나, 질문 하나 같은 기억이 남는 것이면 충분히 영화를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단순히 소비하는 콘텐츠로 대하기보다 하나의 작품으로 받아들인다면, 조금 더 오래 남는 영화를 만날 수 있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