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멍 가이드; 생각 중독자의 휴식법
쉰다는 건 뭘까?
질문을 시작한 순간, 난 이미 쉬기 글렀다. 먼저 쉼을 갖는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누워있는 사람, 산책하는 사람, 커피 마시는 사람. 음…. 나는 어떻게 쉬더라? 도통 쉼의 행위와 내가 겹쳐지지 않는다. 누워서도, 산책하면서도, 커피 마시면서도, 나는 생각한다. 고로 쉬지 못한다. 그렇다. 어떻게든 생각을 멈추는 시간이 나에겐 필요하다.
생각을 멈춘 답시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곤란하다. 여백은 생각을 번지게 한다. 오히려 현재에 머물도록 치열하게 무언가를 하는 상태가 좋다. 멋대로 과거와 미래,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려는 감각을 지금에 붙잡는다. 이때는 자극을 단순하게 만드는 게 큰 도움이 된다. 나의 경우,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현저히 줄여 집중한다. 뭐…. 멍때린다는 소리다.
나는 나만의 든든한 방법이 있다. 미술관에서 멍때리기 일명, 미멍이다. 반나절 정도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날이면, 언제나 미술관에 간다. 단정히 걸려있는 그림을 뚫어지게 본다. 색, 선, 형체가 익숙해질 때 오로지 쉼의 시간에 다다른다.
생각까지 쉬고 싶은 당신과 나를 위한 사적인 방법론을 소개한다. 우린 언제까지나 생각하는 사람처럼 앉아 있을 수 없으니까.
왜 하필 미술관인가?
단순한 곳이다. 누구라도 전시장에 들어서면 정해진 동선, 놓여진 작품을 본다. 동시에 간섭받지 않는 곳이다. 사람 간 소통은 잦아들고 감상이 조용히 자리한다. 하염없이 작품에 시선을 고정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고, 다른 이에겐 내가 보이지 않는다. 혹여나 멍한 나를 보더라도, 골몰하듯 감상한다며 흘리듯 지나갈 테다.
생각은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재료로 삼는다. 재료가 단순하면 생각도 단출해진다. 주제로 엮어 정돈된 작품. 똑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람들. 무소음, 무취에 가까운 공간. 한 곳에 꽂히는 시야. 도심 속 손꼽히는 저자극 공간이 아닌가. 생각에게는 단식원에 가까운 곳이 바로 미술관이다.
물색하자
여기까지 내려와 읽었다면 속는 셈 치고 미멍을 시도해 보자. 첫 고비만 잘 넘기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가장 어려운 것이 전시를 찾는 일이다. 정답은 없지만, 쉼의 형태일 땐 몇 가지 체크리스트가 있다.
- 움직이거나 자극적인 작품을 다루는 전시인가?
(영상, 키네틱, 무브먼트, 퍼포먼스 전시인가?)
- 소음이 허용되는 전시인가?
- 관람 시간이 한정된 전시인가?
(종종 몇 시간 이내 관람이 정해진 전시가 있다.)
3개의 질문에 하나라도 그렇다고 답하게 된다면, 퍽 좋은 선택은 아닐 수 있다. 아래 미멍에 탁월한 7월의 전시를 소개한다. 시간을 내서 들러보기 아깝지 않으니 살펴보기 바란다.
- 퐁피두 한화,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
- 예술의 전당, 스페인의 거장 고야: 이성이 잠들 때, 괴물이 깨어난다
- 서울 시립미술관, 2026년 한국 근대 거장전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
- 세종 미술관, 인상주의를 넘어: 르누아르 · 드가 · 고흐 · 마티스 · 피카소
본격적인 미멍의 시간이다
멍때리는데 어디 정답이 있겠냐만, 멍으로 가는 흐름은 따라가 볼 수 있다. 불멍의 순간을 떠올려보자. 눈이 부시게 밝은 불이 있다. 비해 주변은 새까맣다. 타닥타닥 타는 소리가 들려올 때 모두의 말이 점점 잦아든다. 장작이 다 탈 때까지는 아무 고민도 하지 말자며, 떠오르는 생각을 멀리 떨쳐낸다. 소리, 내 속의 소리까지 고요할 때 멍한 내가 된다.
불을 작품으로 바꾸면 미멍이 된다. 유독 내 눈을 사로잡는 작품을 선택해 보자. 그에 한정된 초점을 둔다. 감상만 떠올리되, 서서히 흘려보낸다. 6월, 나의 불빛은 피카소의 <소녀의 머리>였다.


다시 말하지만, 소녀의 머리다. 어딜 봐서? 싶어 가만 관찰한다. 음…. 머리카락은 있는 것 같고, 조그마한 점이 눈인가. 깨알 평화의 비둘기는 소녀의 목걸이였을까. 물어도 대답 없는 그림에 답을 찾지 않기로 했다. 그저 바라본다. 구불한 터치가 돋보이는 머리(라고 단정 지은 것), 뜬금없는 새가 익숙해질 때. 어느새 나와 내 앞의 그림만 남았다. 그렇게 30분쯤 바라보다 점심 약속에 늦을 뻔했다. 시간도 잊어버린 조용한 머리로 잘 쉬었다.
작품이라고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불 보듯 보자. 해설을 찾아보는 시간은 나중이어도, 찾아보지 않아도 아무래도 좋다.
온전했던 시간을 기록해 보시길
미멍의 묘미라면, 작품이 우연의 만남처럼 스쳐 간다는 데 있다. 재관람 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그러니 나름의 방식으로 남겨주자. 촘촘히 쌓인 휴식의 기록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쉴 수 있다는 위로가 된다. 생각 중독자에게 이만큼 튼튼한 지지대가 없다. 미술관을 비단 예술을 향유하는 공간으로만 단정 짓지 않길. 생각을 비우는 나만의 공간으로 만들어 갈 수도 있는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전시장 안에서 멍때리는 서로를 우연히 만날지도. 각자의 쉼을 응원해 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