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라면 지나쳤을 것들
5년 전 구매한 똑딱이 카메라 리코 GR3. 좀처럼 들고다니지 않았지만, 보름간 다시 카메라를 사용하며, 평소라면 지나쳤을 것들을 하나씩 찍어보았다.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어
항상 ‘옷 정리해야 하는데’ 말을 달고 살면서도, 저번 달에만 산 옷이 몇 개인지. 작년에 5개월 정도 치다 만 베이스도 새 것으로 아주 거금(나름 거금..)을 들여서 산 스콰이어사의 베이스인데, 지금은 영락없는 인테리어용이 되어버리지 않았나.
카메라도 마찬가지다. 내가 사진 찍는 걸 그렇게 좋아하냐 싶으면.. 딱히 좋아하는 것 같진 않다. 핸드폰으로 사진도 잘 안 찍는 것 같은데, 카메라는 무슨 카메라. 잘 들고 다니지도 않는다. 한 손에 딱 쥐어지는 콤팩트한 이 친구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는 나쁜 주인같은. 스스로를 자책하면서도, 인생 살면서 어떻게 그런 손실회피를 다 계산하면서 살 수 있겠냔 말이다. 다시한번 일어서서 ‘그깟 물건쯤이야 마음껏 써주지’ 하는 마음이면 그 물건에 대한 애착은 사라진 상태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물건 중 하나인 리코 GR3. 5년 전 구매한 똑딱이 카메라. 그때 당시에 참 거금을 주고 샀던 것 같다. 무슨 생각으로 그걸 샀던건지. 그때는 지금보다 더 돈이 없었을 백수였을 텐데. 이런 과분한 물건이 나에게 있다는 게 어색하기도.
왜 이걸 샀을까 되돌아 생각해보면, 스냅사진의 힙하면서 리코 특유의 필터가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 같기도… 사실 그게 이유였겠는가, 그냥 물건이 가지고 싶었던 거겠지. 이번 달엔 한동안 어색했던 카메라와 다시 한번 친해져보려 한다.
지나간 것들

카메라를 들고 다닐땐 뭐라도 찍고 싶다. 카메라를 들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냥 지나칠 물건들도 오늘은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내가 많이 찍는 것들이라면 오래된 것들을 많이 찍는데, 이것들도 언젠가 쓸모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적어도 내 눈앞에 나타난 것들은 아직까지도 그 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뜻이겠지. 버림받지 않고. 주차장 입간판은 몰골이 말이 아니다. 그래도 제 역할을 해내고 있구나.

넓은 화면에 홀로 덩그러니 놓인 것들. 외로운 피사체를 좋아하나 보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행위가 사후해석인 경우가 많다. 사진처럼. 찍고 보니 중앙 구도의 사진을 찍었을 뿐이고, 그걸 외로운 피사체로 정의했겠지. 그리고 그렇게 내 사진의 정체성이 만들어진 것이지 않겠나. 의식하지 못한 나의 시선이 사진 속에 쌓이는 걸 느낀다.
어색한 물건들이 내 카메라 안에 나의 것으로 남아 있는 걸 생각하니, 이 카메라에 대한 애착이 조금은 더 생긴 듯 하다.

경산 천도복숭아. 경산. 내 고향. 고향이라는 단어에 큰 의미를 담고 살진 않는다. 20년을 산 경산에서의 추억을 곱씹어도 잘 생각나지 않지만, 그래도 고향이라는 것이 주는 신비로운 힘이라는게 있는 것만 같다.
살다보면 ‘어렸을 때 이랬었지 저랬었지..’하는 잊고 살던 기억이 저편에서 살아날 때를 느낀다. 그것들은 대부분 고향에 관한 것들이고, 그때의 향수가 지금의 감정을 만든다면, 감상적인 것을 넘는 힘을 가진다고 볼 수 있겠지. 그리고 그게 신비로운 힘이 아닐까.
별 의미 없는 복숭아 한 접시인데, 굳이 또 카메라로 찍으면서 내 기억까지 함께 쌓여가는 걸 느낀다. 이것도 신비로운 힘이라고 볼 수 있겠지.
보름 정도의 기간 동안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찍은 것들에 대해 내 감상을 주르륵 갈겨보았다. 카메라를 들고 찍을 때의 감상보단 사진을 사진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어디인지 언제인지 하는 정보를 배제한 채 순수히 시각적 소유물로만 가지게 된다. 그때의 기억을 잊어버린 채 사진만 남는다면, 그게 제일일 것이다. 사진을 사진으로만 바라볼 수 있게 되기에.
특별히 무슨 의미를 가지고 찍진 않았지만, 카메라에 대한 애착은 생긴 듯 하다. 등한시한 물건에 애착을 가지는 일도 꽤 재밌는 일이구나 싶다.
문득 대학 들어가서 사진 동아리를 지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사진 찍는걸 꽤 좋아했었지 참. 한동안은 카메라를 다시 들고 다닐 것 같다. 다시 한번 잘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