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스크리트어를 읽기 위해 요가를 하진 않았습니다만
요가를 시작하길 잘했다
느닷없이 온몸이 신호를 보내올 때가 있다. 똑같은 패턴으로 반복되는 모든 요일이 그저 무덤덤해질 때쯤, 다시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는 걸 설명하기 어려운 감으로 느끼고 있었다. IT 에이전시를 다닐 적이었는데, 전공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해 나가려 애쓰면서도 하나의 일을 오래 간 붙잡지 못해 괴로워하면서도 변화를 원했다. 첫 직장이라 성장 중독에 빠져 머리는 복잡했으므로 움직이는 것을 하겠다고, 단순한 선택에 휩쓸려 만나게 된 ‘요가’다. 따스함을 기대하던 24년 겨울 끝자락이었다.
결과적인 이야기지만 이번만큼은 내 감이 옳았다. 요가하며 삶을 꾸리는 방식이 부쩍 안정되어 갔다. 무엇보다 단정 짓지 않는 법을 배웠다. 할 수 없다거나, 역부족이라거나,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줄이게 된다. 서커스와 한 끗 차이인 요가 아사나*를 하나둘 접근하며 터득한 태도다. 아사나는 밀당의 귀재다. 하루는 자세가 완벽하게 되었다가, 그다음 날 제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 심지어는 평생 그 자세를 못 할 것처럼 멀어질 때도 있다. 일순간 포기하게 되면 아사나는 내 것이 될 수 없으니, 당장에 연연하지 않고 찬찬히, 전체 흐름을 보는 것이 속 편했다. 주에 세 번 꼬박 아사나의 희로애락을 느끼며, 요가에서의 성격이 자연스레 삶에 녹아들어 갔다. 지금의 내가 요가하기 전의 나보다 퍽 마음에 든다. 요기니**가 되길 잘했다.
*아사나 : 요가의 자세 행법을 말한다.
**요기니 : 요가의 길을 따르는 여자 수행자(yogin), 남자 수행자는 요기(yogi)로 부른다.
아사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개인적인 요가 예찬은 이만하고 아사나 이야기를 이어가 볼까. 1년 남짓 돼서야 비로소 움직임이 익숙해진 끝에 선생님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부장가아사나, 브륵샤아사나, 비라바드라. 반복되는 산스크리트어에 다시금 생경해진다. 간간이 한국어로 번역해 주실 때마다 귀를 기울여 본다. 코브라 자세, 나무 자세, 영웅 자세. 이제는 몇몇 입에도 붙은 아사나의 이름들, 그의 뜻이 궁금하다.
활자 중독자는 이럴 때 책을 산다. 요가 바이블이라 불리는 ≪요가 디피카(Light on yoga : yoga dipika)≫를 들이기로 마음먹는다. 요가를 검색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을 보았을 법한 흑백의 사진이 있는 책이다. 600여 장이 넘는 사진과 함께 아사나를 설명하고 있으니, 제격이 아니냐며 책을 산 변명을 해본다.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도록,
아사나의 이름을 정확히 불러주기로 한다.
내가 아사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에게 더 가까이 올 수 있도록.
아사나 톺아보기

브륵샤아사나 (Vrksasana, वृक्षासन, 나무 자세)
나의 브륵샤아사나는 나무보다는 나이테에 가깝다. 같은 자리에서 켜켜이 쌓아 올린 세월 같이 브륵샤아사나도 그렇게 완성될 수 있다.
먼저 나를 바닥으로 더 붙여낸다. 두 발로 서 있다가, 한 쪽 무릎을 구부려 발뒤꿈치를 허벅지에 깊이 붙인다. 균형이 맞아들어가면, 버티고 있는 한 발은 온전히 딛고 굽힌 발은 원래 붙어있었던 양 떨어지지 않는다. 다리가 안정적일 때 비로소 위로 뻗어나갈 수 있다. 손을 가슴 앞에서 합장해 보고, 숨을 고르고, 머리 위로 쭉 뻗어 올려본다. 흔들린다면 손끝으로 갈수록 그 폭이 커진다. 시선을 한 곳에 고정하면, 흔들림이 잦아든다.
나무도 이렇게 서 있겠구나. 뿌리를 먼저 튼튼하게 땅에 매어두고, 해를 바라보며 위로 뻗어보는 힘. 더 높이 올라갈수록, 뿌리는 더 두꺼워져야 한다. 앞으로의 브륵샤에선, 지지의 단단함에 비롯된 뻗어내는 힘의 균형을 느껴보기로 한다.
우르드바 다누라아사나 (Urdhva Dhanurasana, ऊर्ध्वधनुरासन, 활자세 혹은 수레바퀴 자세)
나에게 우르드바 다누라아사나는 완성의 짜릿함을 알려준 첫 동작이다. 두 달을 고전하던 나에게 선생님이 주문한다. ‘지구를 든다고 생각하고 밀어봐요!’ 신기하게도 순간의 상상이 통했다. 두 팔과 다리로 지구를 미는 듯한 힘을 썼고, 활처럼 몸을 뻗어낼 수 있었다. 지금도 가끔은 우르드바를 행할 때, 지구를 미는 상상을 하곤 한다.
우르드바에서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점점 몸의 앞쪽을 늘려내는 힘이 필요해진다. 활의 시위를 걸 때 활대가 속절없이 굽어지는 듯, 척추로 아치를 그리고 가슴을 내민다. 이때 손과 발이 튼튼하게 고정되어 있지 않다면 드는 힘을 쓸 수 없고 일자로 미끄러진다. 활자세라는 이름이 기가 막히게 어울린다. 활대 양쪽이 매어 긴장을 유지하듯, 내 몸의 끝부분이 멀어지지 못해 휘는 듯한 힘을 사용해야 한다.
사람바 시르사아사나 (Salamba Sirsasana, सالम्ब शीर्षासन, 사람바는 지탱하다 시르사는 머리를 뜻해 물구나무서기 자세를 뜻한다.)
사람바 시르사아사나야말로, 아사나의 희로애락의 정점에 있는 동작이다. 책에는 완전히 체득하게 되면 정신적인 면과 육체적인 면에서 균형과 안정을 얻게 한다 쓰여있다. 너무 마땅한 말인 것이, 배우는 과정에서 멘탈과 근력의 한계를 처참하게 맛보기 때문이다. 그러니 반대로 정신과 육체의 힘을 가꿔야만 온전해질 수 있는 동작이 아닌가.
사람바 시르사를 처음 시도했을 때, 제일 먼저 극복해야 했던 건 두려움이었다. 평생 머리를 위로 두고 생활한 내게 역자세는 익숙하지 않음과 동시에, 분명히 뒤로 넘어갈거라며 겁나게 했다. 거듭된 시도로 거꾸로 보는 시선에 적응했을 땐, 반대 방향으로 척추를 세워내는 힘이 턱없이 부족함을 느낀다. -머리를 바닥에 세워두는 힘, 어깨가 무너지지 않는 힘, 몸통을 수직으로 세우는 힘, 다리를 뻗어내는 힘.- 공포를 극복해도, 힘이 부족하면 완성할 수 없다. 반대로 힘은 충분하나, 조금이라도 초조해한다면 금방 무너진다.
변형 동작을 접근해 볼 만큼 살람바 시르사가 익은 지금의 난, 뭐든 해낼 수 있을 거라 무조건 날 믿어주게 됐다. 머리 서기도 하는데 이 정도 일은 별거 아니라며 되뇔 수 있는 말이 생겨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