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에서 풍요로, 연희동 국화빵
연희동 국화빵에서 느낀 과거의 추억과 현재의 풍요로움.
찬바람이 불어오면 가슴 한쪽에 현금을 쟁인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무척 좋아한다. 한 가지 아쉬운 건 대부분 붕어빵이나 어묵이 주인공이라는 것.
여기, 국화빵 하나로도 마음이 든든한 사내가 있다. 그가 서울로 올라와 처음으로 접한 국화빵, ‘연희동 국화빵’은 어땠을까?
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다.
서대문구의 ‘연희동 국화빵’은 헤르만 헤세의 저서 <게으름의 기술> 팝업이 한창이었다. 헤르만 헤세가 국화빵을 먹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 티셔츠와 알록달록한 스티커 너머로 국화빵이 한 무더기 쌓여있었다. 애인과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다가 팥 국화빵과 호지차 소프트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가을의 문턱에서 누릴 수 있는 풍요로움이 천천히 다가왔다.
후다닥 카메라에 음식을 담고, 국화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 카삭. 달궈진 불판에 구워 노릇노릇한 겉면이 이빨에 바스러지는 소리가 경쾌했다. 이어지는 끈덕인 밀가루 반죽과 팥소가 뒤엉켜 내는 달큰한 맛! 으흥~ 탄사가 절로 났다.
하나를 한입에 다 넣었다가 입천장 다 까졌다. 급하게 호지차 맛 아이스크림으로 화재를 진압했다. 호지차는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는데, 이런 맛이면 호지차 팬이라 할 수 있으리라. 달아오른 입속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조용한 단맛과 잘 만든 밀크티 향이 조화를 이뤘다. <흑백요리사2> 우승자인 최강록 셰프가 이런 말 한 적 있지 않은가. ‘뭉게구름 피어나고 두리둥실 춤을 춘다.’ 국화빵과 아이스크림 조합에 적확하다.
잠깐, 그렇다고 당장 몸을 일으켜 가서 사 먹어야 할, 1996년 하이닉스 같은 저점매수 종목은 아니다. 빵의 식감, 달콤함의 정도, 다른 음식과 조화로움이 충분할 뿐이다.
‘꽤 맛있지만, 특별한 맛은 아니군. 하지만 날이 추워지면 추워질수록 찾고 싶은데?’
이렇게 생각하는 와중에도 사람들은 하나둘씩 찾아와 국화빵과 아이스크림을 사 갔다.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이들이 사는 건 빵이 아닌 다른 무언가이지 않을까?
국화빵의 과거와 현재
국화빵을 검색하면 다양한 시기의 글이 나온다. 2000년대 초반 블로그에 쓴 글부터, 2020년대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 올라온 글까지. 20년이 넘는 시간이지만, 주제는 같다. 국화빵과 추억.
주된 레퍼토리는 이렇다. 넉넉지 않았을 시절, 풀빵 (국화빵과 풀빵은 엄연히 다른 음식이지만 모양이 비슷하니 아무튼) 가게 옆을 지날 때마다 부모한테 떼를 써서 먹었다는 것. 별거 아닌 맛이지만 당시에는 정말 맛있었다는 것. 그런 간식을 여전히 팔고 있다는 곳이 있다길래 사 먹었더니 추억이 떠오른다는 것. 글쓴이와 글의 모양은 모두 달랐지만, 방향은 하나였다. 이들은 추억을 먹고 있었다.
나는 어떨까? 내게 국화빵과 관련된 추억은 없다. 감히 추억의 맛이라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다시 연희동 국화빵에 가고 싶다. 추억이라 할 수 없지만 풍요라고 할 수는 있으니까. 바삭하면서도 부드러운 국화빵의 식감이 기분 좋아서. 뭉근하게 피어나는 단팥이 날 따스하게 해줘서. 빵의 열기로 조용히 젖어 드는 봉투 속 국화빵이 하나둘 없어지는 게 못내 아쉬워서. 함부로 주장하고 싶지 않다. 그냥 내 생각은 이렇다. 국화빵은 변했다. 추억에서 풍요로.
무언가를 그 자체로 누리는 건 즐거운 일이다. 동시에 그 너머의 의미로 즐기는 건 또 다른 기쁨이다. 연희동 국화빵에는 그 기쁨이 분명히 있다. 풍요를 누리는 기쁨.
국화빵 하나로 풍요를 누리는 나는 앞으로도 쭉 연희동 국화빵을 찾을 거 같다. 장 프랑수아 밀레의 그림 속 여인들처럼 국화빵을 주우러 가야지. 이 부요함을 누릴 사람이 있다면 꼭 연희동으로 가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