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은 강변에서 신선놀음 하자고 마음먹었다.

이종민

8월, 도림천 능소화는 한창이다.
8월, 도림천 능소화는 한창이다.
 
“차는 없으시죠? 여기 좀 막히거든요.”
서림동 복덕방 사장님께서 하신 말씀. 그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이사 갈 집을 보러 가는 152번 버스에서 알아챘다. 강이 마을을 가로지르는구나. 그래서 도로가 좁구나.
알게 뭐람. 나는 차도 없는걸. 걷기 좋아하는 내게 강변은 천국일 뿐. 이어폰을 귀에 꽂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도 좋지만, 물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걷는 것도 즐거우니까. 여름밤에는 더더욱.
 
나는 밤 산책 철칙이 여럿 있다. 일단 무조건 꾸며야 한다. 꾸밀 게 뭐가 있냐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마다 야구선수 박한이가 떠오른다. 그의 타격 전 루틴은 약 15초에서 24초. 매 타석 저 정도의 정성을 들이는데, 산책이라고 다를까?
 
밤산책에 애용하는 1번 아이템, 다레니모 하와이안 셋업.
밤산책에 애용하는 1번 아이템, 다레니모 하와이안 셋업.
 
옷을 고르는 기준은 아래와 같다.
(1) 직장에서 입을 수 없는 화려한 옷일 것.
(2) 상의의 경우 가슴 단면이 최소 63cm를 넘길 것.
(3) 후들거리는 소재일 것.
(4) 발가락이 보이는 슬리퍼를 신을 것.
 
 
끝으로 부채를 챙긴다. 산책하며 손풍기 바람 쐴 거면 방에서 에어컨 트는 게 훨씬 낫다. 부러 더위를 느끼러 간다면 제대로 즐겨야 한다. 부채를 쥐여주며 뜨거움을 끌어안으라니,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장마로 몸을 불린 도림천이 내는 소리가 청명하다.
장마로 몸을 불린 도림천이 내는 소리가 청명하다.
 
이어폰은 챙기지 않는다. 장마의 끝자락에서 듣는 물보라 소리가 애플뮤직이고 스포티파이다. 음악감상은 잠시 미뤄두고, 물과 하나 되는 무아지경에 빠지자.
 
고독한 큰 새의 이름은 무엇일까?
고독한 큰 새의 이름은 무엇일까?
 
집을 나섰다면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자. 또 다른 세상이 느껴질 것이다. 밑도 끝도 없이 펼쳐진 강줄기가 보인다. 하루를 정리하는 커플의 대화 소리가 들린다. 비 온 뒤에만 맡을 수 있는 젖은 흙냄새가 난다. 이런 게 21세기 신선놀음 아닐까.
 
해질녘 다리 밑 풍경. 오렌지빛 노을에 기분이 좋아진다.
해질녘 다리 밑 풍경. 오렌지빛 노을에 기분이 좋아진다.
 
내 피서법은 여기까지. 참고로 밤 산책은 올해 처음 해봤다. 이런 작자도 ‘나만의 피서법을 만들어 보실래요?’ 따위를 주절거린다. 그러니 어깨 힘 빼고 가장 좋아하는 방식을 찾아 헤매보길.
 
밤산책에 애용하는 2번 아이템, ‘남원 최수봉 부채’.
밤산책에 애용하는 2번 아이템, ‘남원 최수봉 부채’.
 
늘 끄트머리에 물건 얘기를 쓴다. 이번엔 ‘남원 최수봉 부채’. 남원 부채 산업 조합부터 최수봉 장인과 김복남 장인까지. 부채 하나에 담긴 여러 이야기도 좋다. 다만, 나는 생김새에 눈길이 갈 뿐이다. 가벼운 한지와 울퉁불퉁 대나무 손잡이가 운치 있다. 가격도 나쁘지 않으니, 이만한 피서 아이템도 없어 뵌다.